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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
문화유적탐방사업
•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는 문화유적탐방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게 하고 자부심을 고취한다.
• 사상문화원 발전을 위해 회원들의 전통문화 향수권을 신장하고 단합을 도모한다.
제53차 문화유적탐방
• 사업일정 : 2019. 11.1(금) 08:00~18:40
• 탐방장소 : 경상북도 영천시
• 탐방코스 : 부산출발 – 임고서원 – 영천댐 하부공원(점심) – 한의마을 – 은해사 – 최무선과학관 - 부산
• 참가인원 : 사상문화원 회원 170명
• 준 비 물 : 도시락 지참
세부일정표
시간 장소 행사내용
~ 07:.50 집결  
08:00~10:00 부산 출발 ~ 임고서원  
10:00~11:20 임고서원 이동 문화해설
11:40~12:40 영천댐 하부공원 (점심식사) 이동  
13:00~14:00 영천 한의마을 이동 문화해설
14:30~15:30 은해사 이동 문화해설
16:00~17:00 최무선 과학관 문화해설
17:00~18:40 부산 도착  
※ 상기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변경 될 수도 있습니다.
탐방지 소개
임향한 일편단심, 포은 정몽주와 임고서원
1553년(명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임고면 고천동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54년에 ‘임고’라 사액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이듬해에 다시 사액되었다.

1643년(인조 21)에 장현광(張顯光)과 1787년(정조 11)에 황보 인(皇甫仁)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며, 1919년 존영각(尊影閣)을 건립하여 정몽주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다.

1965년에 복원되어 위패를 모셨으며, 1980년 정부의 보조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존영각·강당·포사(庖舍)·유사실(有司室) 등이 있다. 사우인 문충사에는 정몽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존영각에는 영정이 소장되어 있다.

유물로는 정몽주의 영정 3폭과 《포은문집 圃隱文集》 목판 113판, 《지봉유설 芝峰類說》 목판 71판, 《포은집》·《어사성리군서 御賜性理群書》 11권 외에 200여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이 서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내의 은행나무는 경상북도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천 한의마을
영천은 보현산과 채약산에 희귀한 약초가 많고 산과들, 구릉지와 강이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약초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3개의 고속도로와 2개의 철도노선을 경유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생산되는 약재는 물론 인근 경주와 군위, 의성지방의 약초가 모이고 경북 북부지역인 안동, 봉화, 영주의 국산약초도 영천약재시장으로 집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약재의 최대 집산지 영천
국산한약재의 최대집산지이며 한약재 유통의 중심지인영천시는 1960년대부터 한약재 유통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늘날 거래량 15,000톤, 거래금액 1,200억 원등 한약재 유통량의 30%를 차지하는 전국 최대 한약재 유통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한약재도 영천에서는 구할 수 있다고 소문날 정도로 품목이 다양하며 거래되는 약재가 480여 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천시에서는 이러한 한방관련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방 산업화 사업을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영천한방산업특구 지정 및 약초가공시설 지원을 하고 있으며, 약초를 활용한 천연염색사업 등 연계 사업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은해사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 제 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 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무선 과학관
고려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현 경상북도 영천) 광흥창사(廣興倉使)를 지낸 최동순(崔東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고려에는 왜구(倭寇)가 창궐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어 왜구를 물리칠 화기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최무선은 화약을 만들기 위하여 염초의 제조법을 중국 원나라 사람 이원(李元)을 통하여 배웠고이를 기반으로 1376(우왕 2년)에 화약개발에 성공하였고, 1377년(우왕 3년) 화통도감(火화筒통都監)을 설치케하여 화약과 각종 화기를 제조하였다.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포(六花砲)·석포(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불통통)·화전(火箭)·철령전(鐵翎煎) 등 각종 화기(火器)를 제조하였고 이를 실을 수 있는 누선이라는 전함(戰艦)의 건조에도 힘썼다.

1380년(우왕 6년)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최무선은 상원수(上元帥) 나세(羅世)와 함께부원수(副元帥)로 참전하여 진포(鎭浦:금강하구)에서 화포·화통 등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왜선 500여척을 전멸시켜영성군(永城君)에 봉해졌다.

1383년(우왕 9년)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침입한 왜구를정지(鄭地)와 함께 격파했고, 1389년(창왕 1) 화통도감이 철폐되자 최무선은 집에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을 저술하였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태조는 최무선의 공을 인정하여 정헌대부·검교문하부참찬문하부사 겸 판군기시사(正憲大夫檢校門下府參贊門下府事 兼 判軍器寺事)가 되었으며 죽은 후 태종원년 의정부 우정승(議政府 右政丞)에 추증(追贈),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에추봉되었다.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아버지를 이어 화기를 개발했으며 수레에 화기를 장착한 화차를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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